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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걸이 인생

myblog6224 2024. 8. 28. 20:30

턱걸이 인생

 

 

일본의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어느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난 하늘이 준세가지 은혜에 대해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난 나스스로에게 농담삼아 턱걸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또 부하들에게 인생 조언을 해줄때도 가끔턱걸이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시골에서 농사 짓는 부모 밑에 자란 나는 누나가 넷이다. 이것이 내 턱걸이 인생의 시작이다. 자칫 잘못하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을꺼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초등학교 다닐때는 초등학교 4학년때 분교가 돼서 저학년과 합반을 이뤄 1학년(2)4학년(6)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세분이 전부셨다. 내가 대전으로 5학년 겨울방학때 전학을 가고 몇 년후 학교는 폐교를 맞았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고 밤마다 코피 쏟기 일수였다. 병원도 없는 시골에서 자식 하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겠는가.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했으며 마음을 조렸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필드하키를 하면서 우승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준우승은 몇 차례 했지만 우승의 기쁨을 느껴보진 못했고 학창시절의 아쉬움을 이야기 해보라고 한다면 단연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것이다. 함께 운동한 동기들이 나포함 7명인데 나 혼자만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고교 3학년때 그 해 마지막 경기인 전국체육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가능했다.

 

대학 졸업할 때 나의 졸업 학점은 2.84였다. C학점이다. 겨우 대학 졸업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경기때마다 수업을 빠져야 했기 때문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턱걸이로 나마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하다.

 

대학 4학년때 학사장교 지원을 하고 체력검정을 받는 날이었다. 체력검정을 합격하지 못하면 면접 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운동을 전문으로 했던 내가 체력검정을 걱정할리 없었다. 다만 4학년때는 운동을 그만두고 학업에 매진했기 때문에 나름 계획을 짜서 운동을 했던터라 자신감도 충만했다.

 

체력검정은 육군 체력검정 종목과 동일한 1.5km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를 실시한다. 체력검정날 왠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불길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나쁜상태였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후 체력검정에 임했다. 제일 먼저 팔굽혀펴기를 실시했다. 갯 수는 생각나지는 않지만 특급수준의 갯 수를 하고 2분의 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일어서서 대기했다.

 

출발이 순조로와 마음도 한결 안정이되고 기분도 좋아졌다. 다음은 윗몸일으키기다. 차례대로 줄을 서고 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시작은 좋았으나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혼자 연습할때와는 다르게 앞에서 측정관이 무릎을 잡고 나의 발등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서 였는지 자세가 불편했고 이것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경직되어가고 2분이 지나 측정관의그만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고 난!”하는 탄식과 함께 뒤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합격기준에 1개가 부족한 불합격이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어떻게 해야하지부터 만감이 교차 했다. 좌측 첫 번째 인원부터 실시 한 개수를 1:1 멘트했던 측정관들이 불러주고 있었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나에 대한 자책과 실망감 등에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그것도 10년동안 운동한 선수가 윗몸일으키기를 특급도 아닌 불합격을 할 수 있지?’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드디어 내차례가 되고 앞에 있는 측정관이 숫자를 불렀다. “박명산, 00분명 내 이름을 호명하고 개수를 불렀는데 내가 알고 있는 개수가 아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번개같이 몸을 일으켜 앞에 있는 측정관을 바라봤다. 측정관이 나를 보며 씨익 하고 미소를 보낸다. 모든 인원들의 측정 개수를 불러주고 다음조와 교대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시지만 측정관과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된겁니까?”, “제가 한 개 올렸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요짧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다음 조를 위해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어 난 그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 1.5km는 특급을 받았고 난 1개의 숫자를 올려 불러준 측정관 덕분에 소위로 임관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니 가끔 그때의 생각을 하면 아찔하면서도 지금 그 측정관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군대 입대 후 장기복무에 관심은 있었지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일은 어찌될지 모르는일이라 생각해 기초군사훈련과 보수교육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내 특유의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임관과 수료시에는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때문인지 전역하는 해 장기를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 장기가 돼서 지금까지 군복을 입고 있다. 장교는 소위 1, 중위 2, 대위 10년을 복무해야 진급의 기회가 주어진다. 소위에서 중위는 사고가 없다면 자동 진급이 이루어지고 중위에서 대위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진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난 전역하는 해에 장기를 신청해 됐기 때문에 진급 심사에서 제외가 됐었고 당연히 동기들 보다 늦게 진급을 해야 했다.

 

대위에서 소령 진급은 다르다 군생활 중 가장 힘들고 고비라고 말을 한다. 왜냐하면 소령 진급을 하면 20년 이상 복무가 가능하고 20년 복무를 마치면 군인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유행했던 말이 소령부터 대령까지 영관급 장교라고 칭하는데 연금급 장교라고 불리울때가 있었다. 소령진급은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이후에도 진급심사에 반영은 되나 진급은 어렵다고 볼 수 있어 통상 쓰리아웃이라고 말한다. 난 투아웃이후 마지막에 안타를 쳐 소령진급을 3차에 할 수 있었다.

 

이때도 정말 열심히 했던것같다. 지금도 부대 내 PC를 포함해 사용하고 있는 패스워드는 성실, 책임이 들어가는 단어를 조합해 사용하고 있다. 와이프에게 이말을 했을ㄸ때 가장 놀랐던 것 같다. 대단하고 성실함을 인정한다고 말이다. 내 친한 친구들중에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3명의 친구가 있다. 모두 대학 동창이다 2명은 과 친구 1명은 함께 운동했던 친구다. 올해 6월에 한 친구는 결혼을 한다. 책이 발간되고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때에는 2세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2명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결혼에 관심이 없어서 결혼을 할지 여부도 분명치 않다. 이경우를 제외하면 친구들중 가장 빠른 인원이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임신후 출산해 지금 24살의 자녀를 두고 있는 친구를 시작으로 모두 초등학교 이상의 학부모가 되었있으나 난 이제 올해 4살에 접어드는 딸아이 1명을 두고 있다

 

1등 했던 기억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낙오한적도 없다. 운동을 하고 군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근무했고 많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기간이 28년이다. 나를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최고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나 또한 최고라고 기억되고 싶지 않다.

 

최고가 되고 싶어 많은 노력도 했다. 지금도 여러방면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러나 이제는 최고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온 날도 많았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지만 성공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그것에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 페리스는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책을 통해인생의 25%는 자신을 찾아 내는데 써라. 남은 75%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데 집중해라라고 말하고 있다. 나를 찾아내지 못하면 나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나도 모른 사이에 사라진다고 말이다. 이글을 읽고 내가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구나, 감수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군생활 하는 것인데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가족이 고통을 받는다면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은 분명 아닐것이며 내 미래와 가족의 행복을 빌미한 감수하는 삶이 라고 보여진다.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 나의 삶,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으려 달려온 나의 삶, 누구에게나 행복과 감사를 선물해주기 위해 노력 했던 삶, 이것이 내가 진정 원한 것이 아닌 감수를 위한 삶이구나 하고 생각할때가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감수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또한 느즈막한 깨달음을 통해턱걸이 인생의 명맥을 이어가게 만들어 주는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난 나의 이턱걸이 인생이 너무도 맘에 든다. 그 누구의 질투없이 그 누구의 견제 없이 지금까지 응원의 소리와 격려의 소리만 들으며 살았다. 이 하나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내가 1등과 최고와 인연이 있었다면 지금의 감사한 삶이 덜하지 않았겠는가? 또다른 최고를 꿈꾸기 위해 누군가의 질투와 견제속에서 나또한 질투와 견제를 위한 삶을 살며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감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이제는턱걸이 인생이라는 말을 바꾸고 싶다.

 

‘000 인생의 삶이 시작되는 오늘 난 또 하나의 생일을 맞이한다.‘000 인생은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