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뚜껑을 부여잡고 운 아버지
1978년 음력 4월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지금은 남이휴양림으로 유명해짐) 음지마을에
어김없이 붉은 물감을 풀어놓고 놀며 하루를 마무리 할 시간이라고 시계도 없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알람인냥 붉게 퍼질 무렵
밭에서 남산만한 배로 김메고 있던 어머니는 때아닌 배에 진통을 느껴 바로 집으로 이동해 아이를 낳는다.
엄마는 고추를 확인하고 몸도 생각할 겨룰도 없이 내가 태어난 사실을 알리고 싶어 없는 빨래를 만들어 빨래터로 나갔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담담한척 했지만 그러지 못한 표정과 억양으로 자랑을 늘어 놓았다.
난 6남매에 5째면서 장남이다.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6남매라고 하면 놀라지 않는 사람는 드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긴 나도 놀랬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는가.
내 태몽을 말하자면 기가막힌 꿈이다. 해몽만을 본다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인물이 될텐데....현재도 진행형이다.
아버지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엄청나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다가오드란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놈이 어디있다가 이제왔냐며 호랑이를 와락 껴안았고 놀란 호랑이가 뛰기 시작했는데 도착한곳이 우리 집이란다.
어머니는 꿈은 더욱 놀랍다. 어머니가 누나 넷을 낳고 나를 임신한 상태로 산신령을 모시는 지금의 남이휴량림 자리에 사찰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고 신전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암튼 그런곳이 있었고 신자들도 많고 전국에 소문이 자자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기도도 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내가 할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절의 주지스님같은 분이 계셨다. 그곳에 가서 어머니가 울면서 할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아저씨 이번에도 딸이면 집 나가겠다고 해요, 나 어떻게요?” 라고 말이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할아버지 꿈에 산신령님이 나타나 어머니 이야기를 하시며 “이번에는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낳을텐데 그애도 아들이야~” 하더란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고 밑으로 남동생이 한 명더 태어났다. 정말 신기한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가면 비석에 내 이름이 올라가있고 내 이름도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셨다. 그리고 내가갈때면 항상 무릎에 앉이시고는 항상 할아버지가 꾸셨던 태몽이야기를 신도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 하셨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귀하게 태어나 그전까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내가 태어나고 3일 후에 전기가 들어왔다면서 전기불 밑에서 보니 얼마나 잘생겼던지~~하시며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풀어 놓으시곤 했다. 그러니 얼마나 집안에 경사가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뛰어 들어오셔서 부엌 솥뚜껑을 부여잡고 우셨단다.
어머니는 나를 자랑하고 싶어서 애기낳고 그 저녁에 개울까에 빨래를 하러 갔다고 하신다. 이렇게 요란하게 태어났는데 반드시 잘살았다는 소문이 나야하지 않겠는가...
삶의 시작이 화려하고 기적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여정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어떠했든,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을 통해 더욱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과 어머니의 자랑 속에 담긴 기대를 기억하며, 자신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나가세요. 세상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당신이 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