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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순간: 꿈을 향한 첫 걸음

myblog6224 2024. 8. 29. 12:00

 

 

시골에서 공부를 많이 했겠는가? 시골의 삶은 자연에서 뛰놀며 지내고 야무기게 집안의 농사일을 잘 도와준다면 누구에게나 인정공부하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선생님 말씀 잘듣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법이었다. 그러나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대전으로 이사가 알게되었지만 부모님께 과외, 학원에 대해 말 할 수 없는 형편이였으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조차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내가 무슨 공부며 성인이 돼서 어떤직업을 택하고 어떤삶을 살고 싶은지 가치는 무엇인지? 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가치며 직업이며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중학교 입학해서도 변한 것은 없었고 변해야 되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하루 하루 친구들과 놀면서 집에서는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척하며 지내기를 반복하며 시계추 마냥 학교집, 학교집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향했고, 한 창 운동을 하다가 별명이강냉이인 친구와 시비가 붙었다.‘강냉이는 이름이강정훈이었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성을 따서 별명을 지었다. 168cm의 키에 피부는 하했으며 쌍커플은 없었으나 남자치고는 눈이 크고 눈썹이 아주 진한 친구였다. 키는 나와 비슷해서 나와 짝꿍이었다.

왜 싸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당시 그나이엔 별 이유없이 많이 싸우고 화해하고를 했던 것 같다.

그날도 그랬을 것 같다. 머리서 이놈들하는 소리에 나를 포함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소리난 쪽으로 향했다. 체육 선생님 이었다. 선생님은 테니스를 치시다 우연찮게 우리를 보신 듯 했다. 우리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왜싸워 이놈들아, 싸울힘 있으면 운동을 더해하시며 나와 강냉이,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빵을 하나씩 건네고는 하키부에 입단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강냉이와 몇 몇 친구들은 생각이 없다고 했고, 난 역시 그 순간에도 거절을 하지 못하고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선생님이 나와 반친구 한 명을 불렀다.“이승용이라는 친구였다. 왜 우리 둘이 불려왔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난 생각해 보겠다고 해서였고, 승용이는 빵을 주길래라고 만 대답했다.그날 교무실에서 선생님의 구애가 있었고 난 집에가서 부모님께 허락을 받겠노라고 말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운동 소질이 있던가? 난 빼짝 말라서 힘도 없는데 괜찮은가? 힘들면 어쩌지?’등 등의 생각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날 밤 난 고민 끝에 엄마 나 필드하키 해볼래라며 입을 열었다.

엄마는매일 코피흘리고 몸도 허약한데 괜찮겠냐? 너 공부시킬려고 대전왔지 운동시킬려고 이곳까지 온 것 아니다라며 내 말을 일축했다. 할말이 없었다. 엄마에게 이말을 들으니 왠지는 모르지만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날은 철수 했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선택했다.

그날 밤과 다음날 학교에서 내 머릿속에는 온갖필드하키로 가득찼다.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 친한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지금의 고민을 풀어놓았다.‘역시 중1 남자의 감성이란?’알아서 하란다. 내가 왜물어봤다 하는 생각뿐 그리고 더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함께 교무실에 불려간 승용이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할 거야?”,“부모님 허락은 받았어?”승용이의 답은 시원했다.“내가 하고 싶으면 하면돼, 집에서 반대 안해”,“나랑 같이하자~”이말을 들으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들어가면 뻘쭘하기도 하고 눈치도 많이 보고 힘들겠지만 둘이 같이 들어가면 뭘해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서로 의기투합을 했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엄마와 마주했다. 어제보다 목소리에 힘을 줘 말했다. 납득을 시키고 싶었지만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있겠나? 나도 내딸이 커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할 때 기준도 다르고 의견도 다름을 인정하고 존종해줄수 있을까? 나의 기준에 미달될 때 난 어떻게 결정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도록 지도 할 것인가도 고민이다. 그렇게 엄마는 이틀만에 아들의 손을 들어줬고 이로써 다시금 자식을 위해 묵묵히 기도를 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목표라는 것이 생긴 것 같다.‘필드하키 국가대표국가대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고 어떤 비젼이 있으며 저변은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가? 사실 필드하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필드하키를 하라고 제안을 받았을때도 마찬가지다 필드하키가 뭐지?’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고 운동에 별관심이 없었기도 하지만 알려고도 안했고 알려해도 쉽게 알아볼수 있는 것이 없었다.

14살에 처음 꾸게된 꿈, 그때를 난 잊지 못한다.

 

"때로는 인생에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도, 두려움이 앞서도, 그 기회를 붙잡고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의 걱정과 주위 사람들의 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열정입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는 인생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비록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를지라도,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험과 배움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세요. 그 도전이 새로운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